필리핀 부동산 투자 필탑부동산 2011. 1. 2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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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한성희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몇글자 더 끄적여 봅니다.
 
 "내 어머님처럼 주위의 단 몇 사람에게라도 좋은 영향을끼치는 삶이라면 충분히 좋은 인생이라 할 만하다.세상에 욕심낼 일이 많지만 인간됨, 인격을 갖추겠다는욕심을 가진다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존재이유는충분하지 않을까."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중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하더라도피해를 주지 않는 작은 배려심이 필요한 요즘인것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격은 만들어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간에 산 정상의 거친 바위가 바닷가의 단단한 자갈이 되는 건 아니겠죠... 

 

한성희님의 어머님이나 저의 어머님이나,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 모두 당신들께서 지내오신 거친 세월의 바람과 부딪침 속에서 그렇게 더욱 강하게 살아오신 현명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 삶의 지혜는 아마도 남을 해롭게 하지 말고, 남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겠지요...

 

홍익인간 운운하지 않아도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신 저희 어머님은 벌써부터 알고 계시더군요...

 

남에게 진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남을 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어머님들도 그러하실까요?  아직 덜깎여지고, 잘못 깎여진 자갈돌 같은 인생들일 겁니다.

 

인격은 나이가 아니라 가슴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된 마음들, 제가 한국에서 동생과 자취했을 때, 집주인은 나의 어머님을 보고 내공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흔히들 내공이라하면 사업상의 내공(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초고수의 무술 내공(몇 갑자 운운하는 무협지의 내공)은 들어봤지만 제 어머님의 내공은 금시초문이었죠,..

 

그런데 집주인 아줌마는 어머님을 단지 보기만 하고 몇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어머님의 내공을 느까셨다고 했습니다. 내공이 깊으신 분이라는 거죠...

 

그만큼 한이 많다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라는 거겠죠...

 

그런 어머님의 내공은 저희 삼형제에게도 전해지곤 했습니다.

 

예전부터 동네에서 평화유지군과 같이 동네를 주름 잡으시던 골목대장이셨으니까요..

 

어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중화동에 살 때, 어머니는 옆집에 살던 이웃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죠...

 

당시에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했었고, 겨울이면 늘 추위와 연탄재를 뿌리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머니는 이웃과 크게 싸우신 일이 있는데,

 

어머니는 키가 158cm의 애소한 체구였던 반면 상대 아주머니는 모든 면에서 어머니보다 30% 이상 거대한 체구를 가지셨던 분이었습니다.

 

인근의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아무도 저의 어머니를 이겨낼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전 어머님의 내공보다는 약한 여자, 혹은 약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형님이 사업실패로 억 단위의 빚을 졌을 때였죠... (지금이야 형님도, 나름 개인사업을 하시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때 소주를 몇병이나 드셨는지, 어머니는 한문을 배우시던 동네 학원에서 학원장과 술을드시다가 취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이미 소변을 지르셔서 바지는 흥건히 젖어있었고, 또 크게 우시면서 형을 걱정하셨었죠...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던 어머님이 형님의 사업실패와 생전 듣고 보고 못한 억단위의 빚을 졌다는 말에 어머니는 크게 좌절하신 듯 했습니다.

 

학원장의 연락을 받고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 옆의 학원에 가서 전 홍은중학교 위에 있는 산 정상 즈음에 있는 집까지 어머니를 업고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불러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히고, 어머니를 쉬게 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혼자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지금 기억나는건 많지 않네요...

 

다만, 늘 강하게만 보였던 어머님의 흐트러진 모습이 기억날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늘 애틋함이 강합니다.

 

형의 2억에 가까운 빚은 평생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었고, 그 빚 때문에 형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건 어머니에게 형의 사형선고처럼 느껴지셨나 봅니다...

 

하지만 형은 지금, 에어컨 설치 관련한 사업을 하고 있고, 매출도 억단위가 아니라 십억 단위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제가 2년만에 다시 한국에 한 열흘 정도머물다 필리핀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한 2년만에 다시 가족들을 볼 생각하니, 어머니가 참 보고 싶어지네요...

 

겨우 2년이지만  또 자주 인터넷 전화로 종종 아주 쉽게 연락드려서 건강하신 걸 알고 있는데...

 

얼굴을 못뵌지가 2년이니... 형이나 조카들, 형수가 스카이프를 잘 사용할줄 모르기 때문이죠^^

 

아직도 어머니는 그 내공을 그대로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집니다.